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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 백수린(문학동네, 2020) 시간의 궤적 17쪽 어떤 기억들이 난폭한 침입자처럼 찾아와 '나'의 외벽을 부술 듯 두드릴 때마다, 이러다가는 내가 한순간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것은 아닐까 두려우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나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여름의 빌라 56쪽 사실은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음을 그저 받아들였으면 좋았을텐데. 사람은 어째서 이토록 미욱해서 타인과 나 사이에 무언가가 존재하기를 번번이 기대하고 또 기대하는 걸까요. 71쪽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신의 기억이 소멸되는 것마저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순리라고 한다면 나는 폐허 위에 끝까지 살아남아 창공을 향해 푸르게 뻗어나가는 당신의 마지막 기억이 이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폭설 113쪽 엄마가 떠난 밤, 아빠가 그녀를 끌어안았을 때, 그녀는 그때 처음으..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 박상영(인플루엔셜, 2023) 14쪽~15쪽 보통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낯선 사람이 어렵다. 낯선 장소에 가는 것도 그다지 달갑지 않다. 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 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이제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 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이런 내가 여행을 통해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을 즐기기 힘든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마음먹었다. 완벽을, 완벽히 폐기하리라고. 지금이 아닌 언젠가, 이곳이 아닌 어딘가를 꿈꾸는게 아니라, 그저 작은 빈틈을 찾아보리라고. 101쪽~102쪽 주치의 선생님은 내가 겪는 문제가 흔한 번아웃 증상이니 쉬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다. "네? 쉬라고요? 이미 두 달도 넘게 쉰걸요? 매일 아무것도 ..
구의 증명 - 최진영(은행나무, 2015) 34쪽 죽으면 알 수 있을까 싶었다. 살아서는 답을 내리지 못한 것들, 죽으면 자연스레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모르겠다. 살아서 몰랐던 건 죽어서도 모른다. 차이가 있다면, 죽은 뒤에는 모른다고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것뿐.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두게 된다. 125쪽 예전에는 나를 보면 안쓰럽고 신경쓰여 절로 눈물이 나면서도 그게 내 처지 때문인지 자기 인생 때문인지 헷갈렸는데, 헷갈려서 자꾸 잔소리를 하고 간섭했는데, 더는 헷갈리지 않게 된 거다. 헷갈리지 않는 이유는, 마음이 다해서. 내게 줄 마음을 다 줘버려서. 더는 내가 생생할 생물 같지 않아서. 133쪽 ...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나는 구의 말을 마음으로 따라했다. 구는 조금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안된다면 이번 생은 빨리 감기로..
마음의 지혜 - 김경일 (포레스트 북스, 2023) '인간은 살기 위해 행복해야 한다.' '행복을 경험한 개체는 생존성이 강해진다.' 행복은 삶의 평균치가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기에 저 또한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일을 떠올리곤 하죠. 행복은 크기보다 빈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행복의 격을 조금 낮춰서라도 더 자주 행복을 누리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뜻이지요. 나름의 시련 앞에서 살짝 메모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출근해서 책상에 앉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아침 일과로 '나 어제 뭘 맛있게 먹었더라? 나 어제 뭐 때문에 웃었지?'를 떠올리며 적어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아주 사소하고 소박하지만 나를 살짝 힘나게 해주었던 것들. 만족의 감정은 그 대상 자체에서 나오고, 불행은 다른 것과의 격차로 느낍니다. 전혀 다른 시스템이 작용되기 때문에 후회하면서도 만족할..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델리아 오언스(살림출판사, 2019) "단어가 이렇게 많은 의미를 품을 수 있는지 몰랐어. 문장이 이렇게 충만한 건지 몰랐어." 테이트는 미소를 지었다. "아주 좋은 문장이라서 그래. 모든 단어가 그렇게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건 아니거든." 갈 수 있는 한 멀리까지 가봐. 저 멀리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카야는 체이스를 생각해서 웃어주었다. 살면서 해본 적 없는 일인데도 곁에 누군가를 두기 위해 자신의 한 조각을 포기했다. 타인의 기척을 기다리지 않는 건 해방이었다. 그리고 힘이었다. 왜 상처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용서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걸까?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2장 오크라) 74쪽~76쪽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는 매우 좁은 개념의 자유다. 첫째,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경제 영역 내의 자유로, 기업이 가장 높은 이윤을 낼 수 있는 것을 만들고 팔 수 있는 자유, 노동자가 직업을 고를 수 있는 자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자유 등에 한정되어 있다. 정치적 자유나 사회적 자유 등의 다른 자유가 경제적 자유와 충돌을 일으키면 자유시장주의자들의 주저하지 않고 경제적 자유를 우선순위에 둔다. 밀턴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가 살인을 일삼았던 칠레의 피노체트 독재정권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사상적 배경에서 나온 행동이다. 거기에 더해 프리드먼이나 헤리티지 재단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자유는 좁디좁은 경제적 자유의 개념 중에서도 자산소..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1장 도토리) 1. 도토리 - 도토리를 먹고 자라는 스페인 남부의 돼지들과 도토리를 즐겨먹는 한국인의 이야기를 통해 경제적 성과를 결정하는 데 문화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한다. 50쪽 중세에는 이슬람 문화권이(10세기부터 11세기 사이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법학 뿐 아니라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도 유럽보다 훨씬 더 앞서 있었다. 과학 용어 중 얼마나 많은 수가 아랍어에서 온 것인지만 봐도 알 수 있다. 알코올, 알칼리, 알지브라(대수학),알고리즘 등이 그 예다. 52쪽 우리는 무지 때문에, 그리고 어떨 때는 악의적 의도를 가지고 '낯선' 문화에 부정적인 문화적 고정 관념을 적용할 때가 있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어떤 문화의 부정적인 부분만을 골라내서 그 문화권의 나라들이 겪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문화탓으로..
사피엔스 - 유발하라리(4부 과학혁명) p. 356~7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p. 385 우리 문화의 다른 모든 면과 마찬가지로, 과학은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이해관계에 의해 형성된다. p. 389 과학연구는 모종의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제휴했을 때만 번성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연구비를 정당화한다. 그 대신 이데올로기는 과학적 의제에 영향을 미치고, 과학의 발견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한다. p. 397 근대 후기의 성공한 제국들은 모두가 기술적 혁신을 이루리라는 희망을 품고 과학연구를 장려했으며, 많은 과학자들은 제국주의 주인을 위해 무기, 의학, 기술을 개발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
사피엔스 - 유발하라리(3부 인류의 통합) 제 3부 인류의 통합 p.258 돈은 물질적 실체가 아니라 심리적 구조물이다. ... 사람들이 기꺼이 그런 일을 하려 드는 것은 자신들의 집단적 상상의 산물을 믿기 때문이다. 신뢰는 온갖 유형의 돈을 주조하는 데 쓰이는 원자재다.... 이런 신뢰를 창조한 것은 정치, 사회, 경제적 관계의 매우 복잡하고 장기적인 네트워크다. p.268 돈이 공동체, 신앙, 국가라는 댐을 무너뜨리면, 세상은 하나의 크고 비정한 시장이 될 위험이 있다. p.273 제국이 그 기원이라든가 정부형태, 영토의 범위, 인구의 크기에 의해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문화적 다양성과 국경의 탄력성으로만 정의된다는 것이다. p.298 모든 사회 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취약하게 마련이다. ...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경제 시스템이 시작하여 위기에 이르는 과정 세계화의 근본 경제 철학인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성장하고,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리다. 1950~2020년대 기간의 미국중심의 경제흐름을 통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어떤 국제 상황 속에 살아 왔고, 지금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지난 30년간 세계 경제를 주도한 것은 세계화 시스템이었고, 기업과 자본은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중산층 붕괴, 소득불균형은 갈수록 악화 되고 있다. 지금 부터의 문제는 이 익숙한 시스템에 균열이 가고 새로운 시스템으로 변화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화의 문제는 몸소 체감을 하고 있으니 하나하나 말할 필요는 없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어쨌든 지금의 상황, 메타, 환경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 단위에서는 끌려 갈 수 밖에 없다. 최소한 어떤..
천개의 파랑 - 천선란(허블, 2020)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 은혜는 신기한 인간이다. 다른 인간들과 다르게 기구를 이용해 움직인다. 능수능란하고 힘차다. 은혜의 모든 움직임이 콜리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각자 살아갈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정상의' 사람들은 모르는 듯 했다. 대화였다. 콜리는 공감을 느낄 수 없는 개체였지만 공감하는 척 움직이게 만들어졌다. 어차피 사람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공감이었다. 보경은 콜리를 앉혀놓고 몇 번 대화한 후에야 진정으로 필요했던 건 들을 수 있는 귀..
하얼빈 - 김훈 (문학동네,2022) 17쪽 왕권의 지근거리에서 세습되는 복락을 누린 자들일수록 왕조가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갈 때는 새롭게 다가오는 권력에 빌붙으려 한다는 사실을 이토는 점차 알게 되었다. ... 도장을 찍어서 한 나라의 통치권을 스스로 넘긴다는 것은 보도 듣도 못한 일이었으나, 조선의 대신들은 국권을 포기하는 문서에 직함을 쓰고 도장을 찍었다. 18쪽 이토는 조선 사대부들의 자결이 아닌 무지렁이 백성들의 저항에 경악했다. 왕권이 무너지고 사대부들이 국권을 넘겼는데도, 조선의 면면촌촌에서 백성들은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217쪽 안중근이 쏘고 나서 제압당할 때 러시아 헌병들이 - 야포네츠?(일본인이냐?) - 코레예츠?(한국인이냐?) 라고 묻자 안중근은 -코레아 후라. 라고 소리쳤다. 러시아 헌병대가 그렇게 보고해왔다. 안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