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궤적
17쪽
어떤 기억들이 난폭한 침입자처럼 찾아와 '나'의 외벽을 부술 듯 두드릴 때마다, 이러다가는 내가 한순간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것은 아닐까 두려우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나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여름의 빌라
56쪽
사실은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음을 그저 받아들였으면 좋았을텐데. 사람은 어째서 이토록 미욱해서 타인과 나 사이에 무언가가 존재하기를 번번이 기대하고 또 기대하는 걸까요.
71쪽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신의 기억이 소멸되는 것마저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순리라고 한다면 나는 폐허 위에 끝까지 살아남아 창공을 향해 푸르게 뻗어나가는 당신의 마지막 기억이 이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폭설
113쪽
엄마가 떠난 밤, 아빠가 그녀를 끌어안았을 때, 그녀는 그때 처음으로 어른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서도 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131쪽
"이런 걸 보면 인간들의 삶이나 고민은 다 하찮게 느껴지지?"
엄마가 곁으로 다가오는 그녀를 향해 물었다. 하지만 엄마는 여행 내내 그녀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전혀 알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왜 엄마는 나에게 궁금한게 없는 걸까? 자신이 엄마의 인생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건 아닌지, 그녀는 기이하게 생긴 분천탑과 신비로운 빛깔의 온천수가 흐르는 거대한 계단식 지형 앞에서 사진을 찍는 가족 단위 여행객들을 마주칠 때마다 자문했다.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148쪽
어떤 상처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잠복해 있다가 작은 자극에도 고무공처럼 튀어올랐다.
아주 잠깐 동안에
233쪽
우리는 안고 있어도 왜 이렇게 고독한 것일까. 속으로 되뇔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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