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영화13 고려거란전쟁 속 역사 - 강감찬과 3차 거란 침입, 귀주대첩 2차 고려-거란 전쟁이 끝난 뒤 강감찬은 승진을 거듭하며 순탄한 벼슬길을 걸었다. 한편, 종전 이후 고려와 거란의 관계는 점차 악화되고 있었다. 거란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현종은 병이 들었다는 이유로 친조를 할 수 없다고 전하였다. 귀환길에 고려군의 지속적인 기습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거란의 성종은 이에 크게 분개하여, 강동6주 지역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였다. 물론 고려는 이를 거부했고, 양국 간에는 압록강 일대에서 국지적 전투가 여러 차례 벌어졌다. 고려는 거란의 공격을 대체로 잘 방어했으나, 압록강을 건너는 거점이 되는 지금의 의주 일대는 빼앗기고 말았다. 긴장의 수위는 점점 높아졌고, 결국 1018년(현종 9)에 거란은 소배압(蕭排押)을 지휘관으로 삼아 10만의 대군이라 기세를 올리며 고려를 침입했다... 고려 거란 전쟁 속 역사 - 강감찬과 2차 고려 거란 전쟁 강감찬(948년(정종 3) ~ 1031년(현종 22))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관악구 일대인 금주 사람이다. 처음의 이름은 강은천이었다고 한다. 『고려사』에 따르면 강감찬의 5대조인 강여청이 신라에서 금주로 옮겨 살면서 이 지역과 연고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강감찬의 집안이 고려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인 강궁진이 태조 왕건을 섬기면서부터였다. 강감찬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결국 983년(성종 2)에 시행된 과거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고려사』의 급제 기록까지는 이름이 ‘강은천’으로 나오지만 이후의 관직 제수 기록부터는 ‘강감찬’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가 이름을 바꾼 것은 아마도 과거 급제 이후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성종과 그 뒤의 목종 대에 강감찬이 어떤 .. 고려거란전쟁 속 역사 - 양규의 활약(흥화진 전투, 곽주 탈환, 고려 포로 구출) 양규(楊規)는 10세기 말~11세기 초에 살았던 고려의 관리였다. 2차 고려-거란 전쟁 중에 적군의 후방이 된 서북면에서 유격전을 벌이며 수많은 포로를 구출했으나, 마지막 전투에서 안타깝게 전사하였다. 전쟁 이전의 양규의 삶에 관한 기록은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선왕 목종(穆宗) 시대에 관직 생활을 하면서 형부낭중(刑部郎中)이 되었다는 것이 전부이다. 1010년(현종 1) 11월에 그가 이끄는 대군이 고려를 침공했다. (이전 글 참고 : 고려거란전쟁 속 역사 - 2차 고려-거란전쟁 https://admoney.tistory.com/142) 고려거란전쟁 속 역사 - 2차 고려-거란 전쟁 시작, 흥화진 전투 1차 거란은 1004년(목종 7)에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하였다. 거란 황제인 성종과 그 어머니.. 고려거란전쟁 속 역사 - 2차 고려-거란 전쟁(통주전투, 현종 피난, 개경 파괴, 강화) 흥화진을 우회한 거란군이 다음으로 고려군과 마주친 곳은 통주(通州)였다. 바로 강조가 이끄는 주력부대가 자리 잡은 곳으로,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강조는 먼저 자리를 잡은 지리적 이점에 검차를 이용한 전술 활용으로 초반에 잘 방어하였지만, 후반에 거란의 전력을 과소평가하고 방심하다가 크게 패배하였다. 결국 통주전투에서는 강조뿐만 아니라 부장 이현운 등 다수의 장수들이 죽거나 사로잡혔고, 병력도 큰 피해를 입고 흩어졌다. https://youtu.be/R0pTHxE7L3Q?si=6840nU9VmcS3phHb 다행히 통주성(通州城)은 함락되지 않고 버텼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주력부대가 무너지면서 고려군의 전열은 크게 흐트러지고 말았다. https://youtu.be/ClT3ufPcBcM?si=D4HwlO6b.. 고려거란전쟁 속 역사 - 2차 고려-거란 전쟁 시작, 흥화진 전투 1차 거란은 1004년(목종 7)에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하였다. 거란 황제인 성종과 그 어머니인 실권자 승천황태후가 직접 대군을 끌고 나섰으며 거란군은 무서운 기세로 송군을 격파하며 진격하여 수도인 개봉 인근의 전연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화의를 맺었으니, 바로 ‘전연의 맹약’이라 불리는 중국 역사상 중요한 조약이다. 그 결과 송은 매년 거란에 막대한 양의 은과 비단을 보내며, 송의 황제가 거란의 황태후를 숙모로 대우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송을 제압한 거란이 고려에 대해 한층 압박을 가할 가능성은 상존했다. 그러나 일단 원만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으므로, 전쟁이라는 상황까지 발생하기에는 뭔가 계기가 필요했다. 이 계기는 외부적으로 고려와 여진의 갈등이 커지고 내부적으로는 고려 중앙에서 정변이 발생.. 고려거란전쟁 속 역사 - 강조의 정변 과정(1009년(목종 12)) 적어도 기록상으로는 강조가 처음부터 정변을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다. 목종의 명을 받고 군을 일으킨 강조는 개경으로 진격하여 동주의 용천역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위종정과 최창이라는 관리들을 만나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다. 즉 목종은 이미 위독하고,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왕위를 찬탈하려 하고 있으며, 이 계획에 강조가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하여 왕명을 사칭해서 강조를 소환했다는 정보였다. 강조는 이 말을 그대로 믿고 부대로 돌아가 병력을 통제했다. 이 시점 이전의 위종정과 최창에 대해 전해지는 기록은 없다. 다만 모종의 일로 죄를 입고 축출되어 조정을 원망하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강조에게 거짓된 정보를 전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때, 강조는 개경의 정보를 입수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강조를 꺼린 천.. 고려거란전쟁 속 역사 - 강조의 정변 배경(목종 즉위 과정 및 천추태후의 개입, 강조의 등장) 성종은 자신의 조카인 왕송을 990년(성종 9)에 개녕군(開寧君)으로 책봉했고, 궁궐에서 기르며 학문을 가르쳤다. 그리고 997년(성종 16)에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 그를 불러 차기 국왕으로 삼았다. 18세의 나이로 고려의 제7대 국왕으로 즉위한 왕송이 바로 목종이다. 목종대에 관한 기록은 매우 소략하여 자세한 통치 활동을 추적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그나마 이 시기의 특징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千秋太后)의 깊숙한 정치 관여라는 상황이다. 천추태후는 자신의 외가 쪽 친척인 김치양(金致陽)과 손을 잡고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였다. 그런데 이 김치양이라는 인물은 일찍이 성종대부터 천추태후와 정을 통하고 있다고 지목되어, 성종에 의해 장형(杖刑)에 처해지고 귀양을 간 전력이 있.. 열혈사제 (sbs, 2019) 명대사 이영준 몬시뇰 신부님 "싸워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느님.. 몇몇 이들이 많은 사람들을 큰 고통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욕심이 한 아이의 생명을 앗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약한 자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그들의 힘을 약한 자 위에 군림하는데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실과 정의의 눈을 가리고 그릇된 심판을 일삼고 있습니다. 태어나 딱 한 번만 주님의 뜻을 거스르려합니다. 잠시 용서는 접어두고 이들의 죄를 세상에 밝히고자 합니다. 제 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주님께서만 아시겠지만 제 힘이 남아있는 날까지 싸워나갈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자들을 위해서만이 아닌,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축복은 한번 뱉고 말라고 주는 사탕.. 미스터션샤인 속 역사 - 고종의 강제퇴위, 군대해산 1907년은 국권 피탈 과정에서 처절하고 결정적인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1907년 고종은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여 일제의 횡포(을사늑약에 대한 부당함)를 국제 사회에 알리고자 하였습니다. 국제관계는 냉혹한지라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헤이그 특사는 만국평화회의장에 발을 들일수도 없었지만,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의 상황을 알리려 하는 등 이준, 이위종, 이상설 3인의 눈물겨운 처절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헤이그 특사를 빌미로 일본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으며,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맺게 하고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킵니다. 대한제국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손발마저 잘리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과정이 미스터션샤인 속에도 드러나 있습니다. https://youtu.be/6jHX6jqna8k .. 미스터션샤인 속 역사 - 정미의병(1907) 미스터션샤인 드라마의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는 한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바로 이 사진이지요. 이 사진은 1907년 영국출신 언론인이었던 매켄지가 양평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사진을 찍을 당시의 상황을 자신의 책인 과 에서 서술하고 있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된 국가보훈부 홈페이지를 참고하세요!) 여기의 내용을 미스터 션샤인 드라마에서도 활용한 듯 보입니다. https://youtu.be/IxOYmpkzpz4 미스터션샤인 24화 중 외국 기자에게 조선의 상황을 알리다 미스터션샤인에서는 애기씨 고애신을 비롯해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던 정미의병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시대배경으로 보았을때도 1870년대부터 1907년 군대해산과 그 이후 이어지는 의병활동까지를 그려내고 있지.. 미스터션샤인 속 미국인 암살 모티브 - 전명운, 장인환의 스티븐스 사살의거 미스터 션샤인에서 극중 고애신(김태리)과 유진초이(이병헌)는 미국인을 사살하기 위한 장소에서 복면을 쓰고 처음 마주칩니다. 애신과 유진초이는 의도도 세력도 각각 달랐지만 극중 미국인인 '로건'을 죽이기 위해 한날 한시에 같은 장소에 오게 된 것이죠. 각기 하나의 목표물을 총으로 쏘고 낭인들에게 쫓기며 지붕위를 거의 날아다니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긴장감 넘치는 장면! (애신) " 표적은 하나" (유진) "저격수는 둘" (애신) "동지인가" 그리고 그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가로등이 환하게 점등되는 그 순간 거리에서 마주칩니다. 그리고 후에 미국인 죽음과 관련하여 인물들을 조사하는 차원에서 애신을 대사관에 부른 유진,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죠. (유진)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두방향이었소. 정말 어느 .. 미스터션샤인 속 역사 - 1900년 조선 최초 전기 가로등 점등 인생드라마로 손꼽히는 미스터션샤인에는 많은 우리의 근현대사 속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장면이 너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극중 고애신(김태리)과 유진초이(이병헌)가 처음 마주치던 날을 많은 분들께서 기억하실 거예요. " 나를 찾는 거면 이쪽이오." "귀하를 찾은 적 없소." "찾던데." "오해요." "어느쪽으로 가시오?" "그건 왜 묻소" "그쪽으로 걸을까 하여" 미국인을 사살하는 일로 복면 쓴 모습으로 잠깐 마주쳤던 둘은 시가점등이 이루어지는 그 거리에서 만납니다. (미국인 사살 사건과 관련해서는 별도 글에서 이야기할께요!) 이 장면 속 주목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은 바로 1900년대 최초 시가 점등입니다. 1900년, 일반 시가지(길)에 처음 전등이 켜졌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