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쪽
죽으면 알 수 있을까 싶었다.
살아서는 답을 내리지 못한 것들, 죽으면 자연스레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모르겠다. 살아서 몰랐던 건 죽어서도 모른다.
차이가 있다면, 죽은 뒤에는 모른다고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것뿐.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두게 된다.
125쪽
예전에는 나를 보면 안쓰럽고 신경쓰여 절로 눈물이 나면서도 그게 내 처지 때문인지 자기 인생 때문인지 헷갈렸는데, 헷갈려서 자꾸 잔소리를 하고 간섭했는데, 더는 헷갈리지 않게 된 거다.
헷갈리지 않는 이유는, 마음이 다해서.
내게 줄 마음을 다 줘버려서.
더는 내가 생생할 생물 같지 않아서.
133쪽
...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나는 구의 말을 마음으로 따라했다.
구는 조금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안된다면 이번 생은 빨리 감기로 돌려주세요.
그럼 빨리 죽잖아.
그럼... 그냥 무로 돌려주세요. 아무것도 아닌 상태, 그래서 모든 것인 상태로.
싫어. 그것도 죽는 거잖아.
죽는거 아니야. 그냥 좀 담대해지는 거야.
159쪽
나는 내가, 너를 좋아지게 하는 사람이면 좋겠어.
근데 그게 안되잖아. 앞으로도 쭉 안될 것 같잖아.
구의 목소리는 냉랭했지만 구의 눈동자는 버려진 아이처럼 겁에 질려있었다.
네가 있든 없든 나는 어차피 외롭고 불행해.
나는 고집스럽게 대꾸했다.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고 하는거지.
176~177쪽
희망은 해롭다. 그것은 미래니까. 잡을 수 없으니까.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끌어들이니까. 욕심을 만드니까. 신기루 같은 거니까.
이말을 왜 해주고 싶었냐면, 나는 아무 희망 없이 살면서도 끝까지, 죽는 순간에도 어떻게든 살고 싶었는데, 그건 바로 담이 너 때문에. 희망없는 세상에선 살 수 있었지만 너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가 않아서.
죽음은 너 없는 세상이고 그래서 나는 정말 죽고 싶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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