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171 고려거란전쟁 속 역사 - 강감찬과 3차 거란 침입, 귀주대첩 2차 고려-거란 전쟁이 끝난 뒤 강감찬은 승진을 거듭하며 순탄한 벼슬길을 걸었다. 한편, 종전 이후 고려와 거란의 관계는 점차 악화되고 있었다. 거란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현종은 병이 들었다는 이유로 친조를 할 수 없다고 전하였다. 귀환길에 고려군의 지속적인 기습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거란의 성종은 이에 크게 분개하여, 강동6주 지역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였다. 물론 고려는 이를 거부했고, 양국 간에는 압록강 일대에서 국지적 전투가 여러 차례 벌어졌다. 고려는 거란의 공격을 대체로 잘 방어했으나, 압록강을 건너는 거점이 되는 지금의 의주 일대는 빼앗기고 말았다. 긴장의 수위는 점점 높아졌고, 결국 1018년(현종 9)에 거란은 소배압(蕭排押)을 지휘관으로 삼아 10만의 대군이라 기세를 올리며 고려를 침입했다... 고려 거란 전쟁 속 역사 - 강감찬과 2차 고려 거란 전쟁 강감찬(948년(정종 3) ~ 1031년(현종 22))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관악구 일대인 금주 사람이다. 처음의 이름은 강은천이었다고 한다. 『고려사』에 따르면 강감찬의 5대조인 강여청이 신라에서 금주로 옮겨 살면서 이 지역과 연고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강감찬의 집안이 고려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인 강궁진이 태조 왕건을 섬기면서부터였다. 강감찬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결국 983년(성종 2)에 시행된 과거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고려사』의 급제 기록까지는 이름이 ‘강은천’으로 나오지만 이후의 관직 제수 기록부터는 ‘강감찬’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가 이름을 바꾼 것은 아마도 과거 급제 이후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성종과 그 뒤의 목종 대에 강감찬이 어떤 .. 문과남자의 과학공부 - 유시민(돌베개, 2023) 1장 그럴법한 이야기와 확실한 진리(인문학과 과학) 19쪽~20쪽 '거만한 바보'를 그만두기는 쉬웠다. '난 아는 게 별로 없어.' 그렇게 인정하고,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점검하는 습관을 익히면 되는 일이었다. 2장 나는 무엇인가 (뇌과학) 84쪽 맹자가 말한 네 가지 마음은 모두 우리 뇌에 깃들어 있다. 인간의 뇌는 작은 신도시가 아니라 오래된 대도시를 닮았다. 93쪽 뇌에 깃든 우리의 자아는 단단하지 않다. 쉼없이 흔들리고 부서지고 비틀리는 가운데 스스로를 교정하고 보강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견딘다. 101쪽 뇌과학을 조금 알고 나니, 나를 포함해 어떤 인간도 무한 신뢰하거나 무한 불신하지 않게 되었다. 3장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생물학) 127쪽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인문학이 .. 도둑맞은 집중력 1장 너무 빠른 속도, 너무 잦은 멀티태스킹 - 요한 하리(어크로스, 2023) 25쪽~26쪽 이 주제를 숙고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집중력의 분열이 개인에게만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집중력 문제는 사회 전체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단순한 권위주의적 해결책에 쉽게 이끌리고, 그러한 해결책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52쪽~53쪽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든 차원에서 깊이를 희생하고 있다는 겁니다. 깊이는 시간을 요구합니다. 깊이는 사색을 요구해요. 모든 것을 다 따라잡아야하고 늘 이메일을 보내야 한다면 깊이를 가질 시간이 없어져요. 관계에서의 깊이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에너지가 필요해요. 오랜 기간을 필요로 하죠. 거기에 전념해야 해요. 주의력도 필요하고요. 깊이를 요구하는 모든 것이 악화되고 있어요." 우리.. 여름의 빌라 - 백수린(문학동네, 2020) 시간의 궤적 17쪽 어떤 기억들이 난폭한 침입자처럼 찾아와 '나'의 외벽을 부술 듯 두드릴 때마다, 이러다가는 내가 한순간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것은 아닐까 두려우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나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여름의 빌라 56쪽 사실은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음을 그저 받아들였으면 좋았을텐데. 사람은 어째서 이토록 미욱해서 타인과 나 사이에 무언가가 존재하기를 번번이 기대하고 또 기대하는 걸까요. 71쪽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신의 기억이 소멸되는 것마저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순리라고 한다면 나는 폐허 위에 끝까지 살아남아 창공을 향해 푸르게 뻗어나가는 당신의 마지막 기억이 이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폭설 113쪽 엄마가 떠난 밤, 아빠가 그녀를 끌어안았을 때, 그녀는 그때 처음으.. 고려거란전쟁 속 역사 - 양규의 활약(흥화진 전투, 곽주 탈환, 고려 포로 구출) 양규(楊規)는 10세기 말~11세기 초에 살았던 고려의 관리였다. 2차 고려-거란 전쟁 중에 적군의 후방이 된 서북면에서 유격전을 벌이며 수많은 포로를 구출했으나, 마지막 전투에서 안타깝게 전사하였다. 전쟁 이전의 양규의 삶에 관한 기록은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선왕 목종(穆宗) 시대에 관직 생활을 하면서 형부낭중(刑部郎中)이 되었다는 것이 전부이다. 1010년(현종 1) 11월에 그가 이끄는 대군이 고려를 침공했다. (이전 글 참고 : 고려거란전쟁 속 역사 - 2차 고려-거란전쟁 https://admoney.tistory.com/142) 고려거란전쟁 속 역사 - 2차 고려-거란 전쟁 시작, 흥화진 전투 1차 거란은 1004년(목종 7)에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하였다. 거란 황제인 성종과 그 어머니.. 고려거란전쟁 속 역사 - 2차 고려-거란 전쟁(통주전투, 현종 피난, 개경 파괴, 강화) 흥화진을 우회한 거란군이 다음으로 고려군과 마주친 곳은 통주(通州)였다. 바로 강조가 이끄는 주력부대가 자리 잡은 곳으로,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강조는 먼저 자리를 잡은 지리적 이점에 검차를 이용한 전술 활용으로 초반에 잘 방어하였지만, 후반에 거란의 전력을 과소평가하고 방심하다가 크게 패배하였다. 결국 통주전투에서는 강조뿐만 아니라 부장 이현운 등 다수의 장수들이 죽거나 사로잡혔고, 병력도 큰 피해를 입고 흩어졌다. https://youtu.be/R0pTHxE7L3Q?si=6840nU9VmcS3phHb 다행히 통주성(通州城)은 함락되지 않고 버텼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주력부대가 무너지면서 고려군의 전열은 크게 흐트러지고 말았다. https://youtu.be/ClT3ufPcBcM?si=D4HwlO6b.. 고려거란전쟁 속 역사 - 2차 고려-거란 전쟁 시작, 흥화진 전투 1차 거란은 1004년(목종 7)에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하였다. 거란 황제인 성종과 그 어머니인 실권자 승천황태후가 직접 대군을 끌고 나섰으며 거란군은 무서운 기세로 송군을 격파하며 진격하여 수도인 개봉 인근의 전연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화의를 맺었으니, 바로 ‘전연의 맹약’이라 불리는 중국 역사상 중요한 조약이다. 그 결과 송은 매년 거란에 막대한 양의 은과 비단을 보내며, 송의 황제가 거란의 황태후를 숙모로 대우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송을 제압한 거란이 고려에 대해 한층 압박을 가할 가능성은 상존했다. 그러나 일단 원만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으므로, 전쟁이라는 상황까지 발생하기에는 뭔가 계기가 필요했다. 이 계기는 외부적으로 고려와 여진의 갈등이 커지고 내부적으로는 고려 중앙에서 정변이 발생.. 고려거란전쟁 속 역사 - 강조의 정변 과정(1009년(목종 12)) 적어도 기록상으로는 강조가 처음부터 정변을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다. 목종의 명을 받고 군을 일으킨 강조는 개경으로 진격하여 동주의 용천역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위종정과 최창이라는 관리들을 만나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다. 즉 목종은 이미 위독하고,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왕위를 찬탈하려 하고 있으며, 이 계획에 강조가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하여 왕명을 사칭해서 강조를 소환했다는 정보였다. 강조는 이 말을 그대로 믿고 부대로 돌아가 병력을 통제했다. 이 시점 이전의 위종정과 최창에 대해 전해지는 기록은 없다. 다만 모종의 일로 죄를 입고 축출되어 조정을 원망하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강조에게 거짓된 정보를 전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때, 강조는 개경의 정보를 입수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강조를 꺼린 천.. 고려거란전쟁 속 역사 - 강조의 정변 배경(목종 즉위 과정 및 천추태후의 개입, 강조의 등장) 성종은 자신의 조카인 왕송을 990년(성종 9)에 개녕군(開寧君)으로 책봉했고, 궁궐에서 기르며 학문을 가르쳤다. 그리고 997년(성종 16)에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 그를 불러 차기 국왕으로 삼았다. 18세의 나이로 고려의 제7대 국왕으로 즉위한 왕송이 바로 목종이다. 목종대에 관한 기록은 매우 소략하여 자세한 통치 활동을 추적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그나마 이 시기의 특징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千秋太后)의 깊숙한 정치 관여라는 상황이다. 천추태후는 자신의 외가 쪽 친척인 김치양(金致陽)과 손을 잡고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였다. 그런데 이 김치양이라는 인물은 일찍이 성종대부터 천추태후와 정을 통하고 있다고 지목되어, 성종에 의해 장형(杖刑)에 처해지고 귀양을 간 전력이 있.. 열혈사제 (sbs, 2019) 명대사 이영준 몬시뇰 신부님 "싸워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느님.. 몇몇 이들이 많은 사람들을 큰 고통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욕심이 한 아이의 생명을 앗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약한 자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그들의 힘을 약한 자 위에 군림하는데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실과 정의의 눈을 가리고 그릇된 심판을 일삼고 있습니다. 태어나 딱 한 번만 주님의 뜻을 거스르려합니다. 잠시 용서는 접어두고 이들의 죄를 세상에 밝히고자 합니다. 제 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주님께서만 아시겠지만 제 힘이 남아있는 날까지 싸워나갈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자들을 위해서만이 아닌,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축복은 한번 뱉고 말라고 주는 사탕..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 박상영(인플루엔셜, 2023) 14쪽~15쪽 보통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낯선 사람이 어렵다. 낯선 장소에 가는 것도 그다지 달갑지 않다. 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 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이제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 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이런 내가 여행을 통해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을 즐기기 힘든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마음먹었다. 완벽을, 완벽히 폐기하리라고. 지금이 아닌 언젠가, 이곳이 아닌 어딘가를 꿈꾸는게 아니라, 그저 작은 빈틈을 찾아보리라고. 101쪽~102쪽 주치의 선생님은 내가 겪는 문제가 흔한 번아웃 증상이니 쉬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다. "네? 쉬라고요? 이미 두 달도 넘게 쉰걸요? 매일 아무것도 .. 이전 1 2 3 4 5 6 7 8 ··· 1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