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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2

여름의 빌라 - 백수린(문학동네, 2020) 시간의 궤적 17쪽 어떤 기억들이 난폭한 침입자처럼 찾아와 '나'의 외벽을 부술 듯 두드릴 때마다, 이러다가는 내가 한순간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것은 아닐까 두려우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나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여름의 빌라 56쪽 사실은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음을 그저 받아들였으면 좋았을텐데. 사람은 어째서 이토록 미욱해서 타인과 나 사이에 무언가가 존재하기를 번번이 기대하고 또 기대하는 걸까요. 71쪽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신의 기억이 소멸되는 것마저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순리라고 한다면 나는 폐허 위에 끝까지 살아남아 창공을 향해 푸르게 뻗어나가는 당신의 마지막 기억이 이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폭설 113쪽 엄마가 떠난 밤, 아빠가 그녀를 끌어안았을 때, 그녀는 그때 처음으..
구의 증명 - 최진영(은행나무, 2015) 34쪽 죽으면 알 수 있을까 싶었다. 살아서는 답을 내리지 못한 것들, 죽으면 자연스레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모르겠다. 살아서 몰랐던 건 죽어서도 모른다. 차이가 있다면, 죽은 뒤에는 모른다고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것뿐.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두게 된다. 125쪽 예전에는 나를 보면 안쓰럽고 신경쓰여 절로 눈물이 나면서도 그게 내 처지 때문인지 자기 인생 때문인지 헷갈렸는데, 헷갈려서 자꾸 잔소리를 하고 간섭했는데, 더는 헷갈리지 않게 된 거다. 헷갈리지 않는 이유는, 마음이 다해서. 내게 줄 마음을 다 줘버려서. 더는 내가 생생할 생물 같지 않아서. 133쪽 ...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나는 구의 말을 마음으로 따라했다. 구는 조금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안된다면 이번 생은 빨리 감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