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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화

미스터션샤인 속 미국인 암살 모티브 - 전명운, 장인환의 스티븐스 사살의거

by 인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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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션샤인에서 극중 고애신(김태리)과 유진초이(이병헌)는 미국인을 사살하기 위한 장소에서 복면을 쓰고 처음 마주칩니다.

 

애신과 유진초이는 의도도 세력도 각각 달랐지만 극중 미국인인 '로건'을 죽이기 위해 한날 한시에 같은 장소에 오게 된 것이죠. 각기 하나의 목표물을 총으로 쏘고 낭인들에게 쫓기며 지붕위를 거의 날아다니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긴장감 넘치는 장면!

    (애신) " 표적은 하나"

    (유진) "저격수는 둘"

    (애신) "동지인가"

  

그리고 그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가로등이 환하게 점등되는 그 순간 거리에서 마주칩니다. 

그리고 후에 미국인 죽음과 관련하여 인물들을 조사하는 차원에서 애신을 대사관에 부른 유진,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죠. 

(유진)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두방향이었소. 정말 어느 한쪽도 보지 못했소?" 

(애신) "못봤소"

(유진) "난 본것도 같은데"

(애신) "수상한게 그런거라면 나도 본 것도 같소만"

 

드라마에서의 로건 테일러는 실제 1904년 대한제국의 외교고문으로 왔던 스티븐스를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로건 테일러를 사살하는데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우연히 한날 한시에 같은 장소에서 로건을 쏜다는 점,
 
미국인에 대해 1900년대 사살 의거가 있었다는 점, 
 
그 미국인이 친일적인 행위로 악영향을 끼치고있었다는 점 
 
등에서 이들의 극적인 만남의 모티브는 실제 역사상 스티븐스 사살사건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러일전쟁 후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일본의 우월권을 인정하고 미국에게 필요한 이익을 얻고자 합니다.

 

이에 일본은 통감부의 외교 고문이자 일본의 앞잡이인 스티븐스(1904년 제 1차 한일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고문으로 부임)를 미국으로 파견하여, 일본의 한국 지배를 정당화하고자 하였습니다.

 

전명운, 장인환의 스티븐스 사살 의거

 

1908년 스티븐스는 3월 일본에서 출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합니다.

도착 즉시 그는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한국 지배는 한국에 유익하다’는 제목의 친일성명서를 발표합니다.

이러한 한국을 모욕하는 신문기사가 보도되자 샌프란시스코 한인들은 일제히 분개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인들은 스티븐스에게 강경한 항의를 하기로 결정하고 숙소로 스티븐스를 찾아가 성명서 내용의 정정을 요구하였지만 스티븐스는 여전히 “한국에 이완용과 같은 충신이 있고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통감이 있으니 한국의 큰 행복이요 동양의 다행이다”는 망언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미주지역 한인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친일성명서를 반박하는 성명서를 기고하였으며, 스티븐스를 사살하기로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스티븐스가 워싱턴 행 대륙횡단철도를 타기 위하여 오클랜드 페리부두선창으로 갈 것이란 정보를 입수하고, 이곳을 거사 장소로 택합니다.

 


3월 23일 오전 9시 30분 경 호텔 자동차가 부두에 도착하자 전명운이 재빨리 스티븐스에 접근, 손수건으로 감싼 권총을 꺼내어 그에게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으나 불발이었다고 합니다.

 

당황한 전명운은 총자루로 그의 얼굴을 후려치고 달아났고, 스티븐스는 얼굴에 심한 파열상을 입고 넘어지면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전명운을 추격하였습니다.

 

몇 발자국을 갔을 때 스티븐스 뒤쪽에서 장인환이 권총 3발을 발사했고, 전명운의 어깨와 스티븐스의 어깨뼈, 복부를 명중시킵니다. 장인환은 체포되고 전명운과 스티븐스는 응급치료를 받은 후,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며 그 후 스티븐스는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이틀 뒤 25일 사망합니다.

 

샌프란시스코 경찰서로 연행된 장인환은 성명서를 통해 스티븐스 사살 동기를 밝힙니다. 이를 보면, 당시 시대상황에서의 울분과, 나라를 빼앗으려는 일본의 의도를 막고자 하는 의지, 애국심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우리 나라는 일본의 보호정치 이래로 완전 파멸 상태이다. ... 그는 한국을 위해 봉사한다 해서 한국 정부로부터 후대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위해 한국인에게 온갖 잔인한 일을 자행해 왔던 것이다. 그는 한국에 재임하고 있는 동안, 한국을 위해 일한 것처럼 떠들어대고 있지만, 그것은 모두가 거짓말이다. … 지금 일본은 세계열강의 제재 때문에 한국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본은 스티븐스를 미국에 파견, ‘일본의 한국지배는 한국에게 유익하다’는 거짓말을 퍼뜨리고, 미국 국민에게 이 말을 믿을 수 있도록 설득 연설을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 나는 이 사람을 죽이지 않을 수 없다. ... (The San Francisco Chronicle, March 25, 1908).

사건 발생 후 미주지역 한인들은 의연금을 모았으며 변호사와 통역 비용 등 공판에 소요되는 경비를 감당했다고 합니다.

전명운은 어깨 부분에 입은 총상이 치명상이 아니기 때문에 병원치료를 받고 회복, 퇴원해서 4월 3일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정에 서게 됩니다. 검찰은 살인사건의 공범을 강조하였지만 변호인은 공모사실을 완강히 반박하고 오히려 전명운 역시 총을 맞은 피해자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있었지만 우연이었을뿐 서로 몰랐던 사이이며 오히려 피해자라고 주장함!)

 

결국 그는 구속기소된 지 97일만인 1908년 6월 27일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보석으로 석방된 전명운은 장인환 재판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 악영향을 끼칠 것을 염려하여 극비리에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하였습니다.


장인환은 3월 27일 계획에 의한 일급 모살혐의로 공식 기소되어, 약 8개월간 재판투쟁을 벌입니다.

일제가 고용한 원고측 변호사와 검사는 장인환을 계획적인 일급 살인혐의로 사형을 요구하였지만 한국측 변호인단의 노력으로 1909년 1월 2일 장인환은 사형을 면하고 25년 금고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그 후 네 차례의 가석방청원서를 제출한 끝에 장인환은 1919년 1월 10일 가출옥하였습니다.

 

 

참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스티븐즈사살의거(─射殺義擧))

          민족문제연구소 https://www.minjok.or.kr/archives/76503

          우리역사넷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43_0030_0050_0010_0020    

 

우리역사넷

(2)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 스티븐스는 1908년 3월 3일 일본에서 출발, 20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도착 즉시 그는≪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The San Francisco Chronicle)지와의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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