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화진2 고려거란전쟁 속 역사 - 2차 고려-거란 전쟁(통주전투, 현종 피난, 개경 파괴, 강화) 흥화진을 우회한 거란군이 다음으로 고려군과 마주친 곳은 통주(通州)였다. 바로 강조가 이끄는 주력부대가 자리 잡은 곳으로,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강조는 먼저 자리를 잡은 지리적 이점에 검차를 이용한 전술 활용으로 초반에 잘 방어하였지만, 후반에 거란의 전력을 과소평가하고 방심하다가 크게 패배하였다. 결국 통주전투에서는 강조뿐만 아니라 부장 이현운 등 다수의 장수들이 죽거나 사로잡혔고, 병력도 큰 피해를 입고 흩어졌다. https://youtu.be/R0pTHxE7L3Q?si=6840nU9VmcS3phHb 다행히 통주성(通州城)은 함락되지 않고 버텼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주력부대가 무너지면서 고려군의 전열은 크게 흐트러지고 말았다. https://youtu.be/ClT3ufPcBcM?si=D4HwlO6b.. 고려거란전쟁 속 역사 - 2차 고려-거란 전쟁 시작, 흥화진 전투 1차 거란은 1004년(목종 7)에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하였다. 거란 황제인 성종과 그 어머니인 실권자 승천황태후가 직접 대군을 끌고 나섰으며 거란군은 무서운 기세로 송군을 격파하며 진격하여 수도인 개봉 인근의 전연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화의를 맺었으니, 바로 ‘전연의 맹약’이라 불리는 중국 역사상 중요한 조약이다. 그 결과 송은 매년 거란에 막대한 양의 은과 비단을 보내며, 송의 황제가 거란의 황태후를 숙모로 대우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송을 제압한 거란이 고려에 대해 한층 압박을 가할 가능성은 상존했다. 그러나 일단 원만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으므로, 전쟁이라는 상황까지 발생하기에는 뭔가 계기가 필요했다. 이 계기는 외부적으로 고려와 여진의 갈등이 커지고 내부적으로는 고려 중앙에서 정변이 발생..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