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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2

고려거란전쟁 속 역사 - 강감찬과 3차 거란 침입, 귀주대첩 2차 고려-거란 전쟁이 끝난 뒤 강감찬은 승진을 거듭하며 순탄한 벼슬길을 걸었다. 한편, 종전 이후 고려와 거란의 관계는 점차 악화되고 있었다. 거란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현종은 병이 들었다는 이유로 친조를 할 수 없다고 전하였다. 귀환길에 고려군의 지속적인 기습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거란의 성종은 이에 크게 분개하여, 강동6주 지역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였다. 물론 고려는 이를 거부했고, 양국 간에는 압록강 일대에서 국지적 전투가 여러 차례 벌어졌다. 고려는 거란의 공격을 대체로 잘 방어했으나, 압록강을 건너는 거점이 되는 지금의 의주 일대는 빼앗기고 말았다. 긴장의 수위는 점점 높아졌고, 결국 1018년(현종 9)에 거란은 소배압(蕭排押)을 지휘관으로 삼아 10만의 대군이라 기세를 올리며 고려를 침입했다...
고려 거란 전쟁 속 역사 - 강감찬과 2차 고려 거란 전쟁 강감찬(948년(정종 3) ~ 1031년(현종 22))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관악구 일대인 금주 사람이다. 처음의 이름은 강은천이었다고 한다. 『고려사』에 따르면 강감찬의 5대조인 강여청이 신라에서 금주로 옮겨 살면서 이 지역과 연고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강감찬의 집안이 고려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인 강궁진이 태조 왕건을 섬기면서부터였다. 강감찬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결국 983년(성종 2)에 시행된 과거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고려사』의 급제 기록까지는 이름이 ‘강은천’으로 나오지만 이후의 관직 제수 기록부터는 ‘강감찬’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가 이름을 바꾼 것은 아마도 과거 급제 이후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성종과 그 뒤의 목종 대에 강감찬이 어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