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를 이 괴로움과 속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깨달음'입니다. 마치 깜깜한 방에서 어떤 물건을 찾느라고 헤메다가 불을 탁 켜면 방 안에 있는 것들이 한눈에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복잡해도 다른 것을 건드리지 않고 단박에 자기가 찾던 것을 잡을 수 있어요. 이렇게 어두운 방에 불이 탁 켜졌을 때와 같은 것이 깨달음입니다.
'믿어야지, 믿어야지' 하며 다짐하는 사람은 아직 믿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직접 체험하고 나면 저절로 믿어집니다. 깨닫게 되면 '눈 있는 자 와서 보라'고 하듯이 저절로 알게 됩니다. 억지로 각오하고 결심하는 건 수행이 아닙니다.
예를들면 이불 속에서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하고 결심만 하다가 다시 잠드는 일이 많습니다. 일어나야 한다고 자꾸 되뇌는 것은 일어나려고 노력하는 듯 하지만, 그 마음 속을 꿰뚫어 보면 '일어나기 싫다, 일어나기 싫다'고 되뇌는 것과 같습니다. 일어나기 싫음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냥 벌떡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나야 한다고 애쓰는 것은 아직 일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다짐하는 소리입니다.
수행 방식이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 목표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데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도 본질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애는 애대로 쓰면서도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부부가 서로 다투면서도 내심으로는 자기가 옳다는 확신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오히려 부부간의 갈등이 심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불교 공부를 하면서 '부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네'하며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 확실해지면, 그 때부터는 부처님의 말씀을 내세워 자기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불교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 더욱더 강고해집니다. 이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을 내세워 자기가 옳음을 고집하는 것이 법집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아집뿐 아니라 이러한 법집까지도 타파해야 함을 염두에 두고 [반야심경]을 공부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무한히 크고, 그 무한한 세계 속에서 우리는 티끌 같은 작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 무한한 우주적 시간에서 보면 우리의 일생이란 것은 찰나도 안 된다는 말이에요.
실상은 사물의 실제 모습,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환상이나 허상을 보면서 실상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지요. 내 배우자, 내 부모, 내 자식, 내 친구를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내가 아는 모습, 내가 보는 그의 모습을 실상이 아니라 허상입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허상을 붙들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정말 실상인가를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그토록 확신했던 것이 허상임을 알면 그 순간부터 인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허상을 보고 있었음을 알고 나면 앞으로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기회가 주어집니다. 모르고서는 아무 기회도 얻지 못합니다.
댓글